2011년 3월 7일 월요일

운동하는 사람들, 헬스하는 우리들(!?)

오랜만에 이곳에 글을 써 본다.
실은 2월 한달간에 벌어졌던 나 자신의, 나를 둘러싼 환경의 비이성적임과 나태함에 대해 글을 써 보고자 했지만, 어떠한 연유에서 불편했던 관계로, 이렇게 새로 공백을 메워 나간다.


2009년,2010년 어느 날.
절친한 친구와 어떠한 이상상(理想像)을 그리며 이런 말들을 했던 게 떠오른다.

"꿈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어릴적, 나는 왠지 유관순이나 안중근처럼 독립운동가가 되고 싶어했었지. 하지만 그건 전세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지닌 확고한 민족주의적 국가관이나 애국관하고는 조금 다를지도 몰라."

"음, 나 역시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너무나도 부러워. 그때에는 '보이는' 절대권력이 있었고, 그것은 적이었기 때문에, 확실한 투쟁이 가능했잖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것과의 전쟁이 너무나도 힘든 것 같아.."



2008년 6월에는 몽골 총선이 있었다. 그러나 선거에 관련하여 불거지는 부정행위로 인해, 시민들은 거리로 뛰어 나왔다고 한다. 몽골 역사상 최초 시위. 그 사태는 계엄령 선포와 함께 나타난 장갑차와 총기류에 의해 얼마 안 지나 완벽하게 저지되고 말았다고 한다. 인민혁명당 당사는 불에 태워졌다.
그곳은 재건되고 있다.

내가 지금 타이핑을 하고 있는 곳에서는 그 construction spot이 아주 잘 보인다. 아주 가까이에 있다.

2007년 버마(현 미얀마)의 사프란혁명에 관한 쇼크로 인해 현지를 찾아갔던 것이 딱 1년2개월 전이다. 나는 그 때,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졸업논문마저 잠시 내팽개치고 갔던 그곳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본 모든 것들은 나와는 분리된, 마치 영화 필름처럼 내 앞을 지나갔다. 그 느낌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버마에 다녀온 지 3개월 후, 나는 언제 열정이 있었느냐는 듯이 전형적인 대학원생이 되어 계량경제학과 자본의 노예가 되어갔다. (마음 속에서는 그런 내 자신을 무너뜨릴 무언가가 필요했는 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내가 대한민국정부의 봉사자로 몽골에 파견되어, 일종의 '공무' 특성을 지닌 사람이 되고서는, 나는 또다시 실수를 저지르려 하고 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저기 있는데, 나는 헬스장을 알아보고 있다. 게르에서 눈코가 다 매운 연기를 들이켜며 자는 사람들이 저곳에 있는데, 나는 너무나도 무감각했다. 이랬던 나날이 2월이었다면, 나는 그것들을 이월시키지 않아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며칠 전에 동지애를 가진 동기와 함께 몽골을 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행동할 때가 항상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나는 여지껏, 뜨겁게 행하려다 그냥 busy mode가 되어,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패해 왔다. 나의 열망이라는 달걀이 잘못된 타겟이라는 바위에 부딪히는 일은 없어야 겠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의 근저를 형성하는 것이, 확고해질 필요가 있겠다.




2008년 몽골의 그 나날에 관한 링크:

뉴스보도자료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148006586471568&DCD=A03101

현지상황report http://www.kdemocracy.or.kr/KDFOMS/Search/WonmunView2.asp?ArtcRegNo=2140&FileSeq=1
몽골비상사태 배경은? http://gurum.tistory.com/431

2009년 인민혁명당 새당사 기공식 언론보도 http://www.kmnews.co.kr/site/home/kmnews/bbs.php?id=news_mongollia&q=view&uid=936&PHPSESSID=08fc86fa616619f452d94199c6be1c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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